기름값 다음은 밥상, 식량 위기가 늦게 오는 이유

기름값 다음은 밥상, 식량 위기가 늦게 오는 이유

주유소 가격판은 매일 숫자가 바뀌어서 지나가다가도 눈에 들어온다. 마트 쌀값이나 밀가루값은 다르다. 몇 달 늦게, 조용히 따라온다. 이번 주에 읽은 보고서가 다루는 게 바로 이 시차다. 에너지 충격은 이미 시장 화면에 찍혔지만 식량 쪽 충격은 아직 시작도 안 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무슨 일이 있었나

S&P글로벌이 10월 19일에 보고서를 냈다. WSJ가 10월 22일(현지시간)에 이를 보도했고, 연합뉴스가 10월 23일에 전했다. 보고서는 세계 식량 가격을 밀어 올릴 악재로 세 가지를 꼽는다.

  1. 비료: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다. 비료와 비료 원료가 제때 오지 못한다.
  2. 경유: 농기계를 돌리고, 물을 대고, 농산물을 실어 나르는 데 쓰는 경유 공급이 줄었다.
  3. 엘니뇨: 지난 7월 시작된 엘니뇨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S&P글로벌 부회장 대니얼 예긴은 이걸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에너지 위기는 (시장) 화면에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만, 식량 위기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전개될 것"(연합뉴스).

왜 움직였나

호르무즈는 기름 길이면서 비료 길이기도 하다. 전쟁 전 세계 석유 공급의 약 20%, LNG 교역의 약 20%가 이 해협을 지났다. 여기까지는 많이들 안다. 보고서는 그 뒤에 가려진 숫자를 꺼냈다. 세계 요소비료 교역의 약 29%, 황 교역의 거의 절반, 암모니아 교역의 약 21%도 원래 이 길로 다닌다. 비료 원료인 황은 9월 가격이 올해 1월보다 약 70% 올랐다.

충격은 걸프 밖으로도 번진다. 질소비료 공장이 천연가스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인도는 국내 요소 생산의 약 85%를 LNG에 기댄다. 방글라데시는 LNG가 모자라 3월부터 요소비료 공장 5곳 중 4곳이 멈췄다.

경유는 원유보다 더 빨리 올랐다. 원래 세계 경유 순수출의 절반을 중동과 러시아가 맡는다. 중동 경유 수출은 2025년 7월보다 절반 넘게 줄어 2026년 7월에 하루 100만 배럴 밑으로 내려갔다. 러시아는 사정이 더 나쁘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과 수출 금지가 겹쳐 하루 약 100만 배럴에서 0 가까이로 줄었다.

바이오연료가 작물을 붙잡는다. 9월 유럽에서 처음으로 바이오연료가 석유 기반 선박 연료보다 싸졌다. 바이오연료 수요가 버티면 작물과 식물성 기름이 연료 쪽에 묶인다. 식량 쪽으로 돌아갈 몫은 그만큼 줄어든다.

여기에 엘니뇨가 겹친다. NOAA는 10월 8일 발표에서 1012월 엘니뇨가 '역사적 수준'(3개월 RONI +2.5°C 이상)에 이를 확률을 83%로 봤다. 같은 발표에서 지난 한 달 Niño-3.4 지수는 +2.1°C까지 올라 있었다. 참고로 20142015년 강한 엘니뇨 뒤에도 세계 식량 가격은 약 10% 올랐다.

숫자로 보기

이미 화면에 보이는 숫자와 아직 보이지 않는 숫자를 나눠 봤다.

구분 지표 숫자
이미 보임 황 가격 (2026.1 → 2026.9) 약 +70%
이미 보임 원유와 경유의 배럴당 가격 차 평소 12~20달러 → 9월 첫 주 100달러 넘음
이미 보임 역사적 엘니뇨 확률 (10~12월, NOAA 10/8) 83%
오르는 중 FAO 세계식량가격지수 (2026.9) 136.0, 전월 대비 +1.5%
아직 조용 한국 농축산물 소비자물가 (2026.9, 전년 대비) -1.0%

경유 가격 차는 평소의 5배에서 8배쯤 된다(100 ÷ 20 = 5, 100 ÷ 12 ≈ 8.3). 농민 입장에서는 트랙터를 한 번 돌릴 때마다 드는 돈이 원유값 상승폭보다 훨씬 크게 뛴 셈이다.

FAO 지수는 5월부터 이렇게 움직였다.

5월 6월 7월 8월 9월
131.0 130.1 131.7 134.0 136.0

6월 저점을 찍고 9월까지 석 달 연속 올랐다. 5월과 비교하면 이렇다.

(136.0 − 131.0) ÷ 131.0 ≈ 3.8%

농림축산식품부 요약을 보면 9월에는 곡물, 유지류, 설탕 가격이 올랐고 육류와 유제품은 내렸다.

그럼 2014~2015년처럼 10%가 더 오르면 어디까지 갈까. 단순히 곱해 보면 136.0 × 1.10 ≈ 149.6이다. 예측은 아니다. '지난번만큼 오르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아 보려고 해 본 계산이다.

왜 2027년인가: 농사 달력으로 본 시차

보고서가 가장 힘주어 말하는 건 시차다. 순서대로 놓으면 이렇다.

  1. 산다: 농민이 종자, 비료, 연료를 산다. 비용 충격은 여기서 바로 맞는다(지금).
  2. 줄인다: 비싸서 비료를 덜 뿌리거나 심는 면적을 줄인다.
  3. 기다린다: 작물이 자라는 동안 엘니뇨가 폭염, 가뭄, 폭우로 수확을 흔든다.
  4. 판다: 몇 달 뒤 줄어든 수확이 시장에 나오고, 그제야 가격에 반영된다.

그래서 S&P글로벌은 지금의 비용 압박이 2027년에야 식량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보고서의 맺음말은 이렇다. "A global food crisis is not foreordained. But neither is it any longer a distant risk." 정해진 미래는 아니지만 먼 이야기도 아니라는 뜻이다.

내 생각: 개인 투자자로서 볼 지점

개발자라서 그런지 나는 이 이야기를 지연이 아주 긴 파이프라인처럼 읽었다. 입력(비료, 경유)은 이미 망가졌는데 출력(밥상 물가)은 몇 달 뒤에야 찍힌다. 잘못된 커밋은 오늘 들어갔는데 장애 알림은 다음 분기에 울리는 구조다. 이런 버그가 제일 무섭다.

그래서 지금 국내 농축산물 물가가 -1.0%라고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고 본다. 9월에 그 숫자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9%)을 끌어내리는 데 보탰다. 내년에는 그 역할이 반대로 뒤집힐 수 있다.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질문도 결국 그거다.

그렇다고 당장 뭘 사고팔 이야기는 아니다. 대신 확인할 숫자 세 개를 달력에 넣어 두기로 했다.

  • FAO 세계식량가격지수: 매달 초에 나온다. 넉 달째 오름세가 이어지는지 보고, 곡물이 계속 오름세에 들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한다.
  • NOAA 엘니뇨 발표: 매달 둘째 목요일에 나온다(다음은 11월 12일). 역사적 수준 확률 83%가 오르는 쪽인지 내리는 쪽인지 본다.
  • 경유 가격: 원유와의 가격 차가 평소 수준(배럴당 12~20달러)으로 돌아오는지 본다. 이게 풀리면 농가 비용 압박도 따라서 풀린다.

세 숫자가 같은 방향으로 가면 생활비 계획을 보수적으로 잡을 생각이다. 반대로 해협이 열리고 엘니뇨가 약해지면 보고서의 표현대로 위기는 '정해진 미래'에서 멀어진다.

정리

  • S&P글로벌은 비료 공급 차질, 경유 부족, 초강력 엘니뇨를 식량 가격의 세 가지 악재로 꼽았다.
  • 황 +70%, 경유 가격 차 배럴당 100달러 이상, 엘니뇨 확률 83%는 이미 화면에 보이는 숫자다.
  • 농사는 사서 심고 거둬 팔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 그래서 밥상 물가 충격은 2027년에 본격화할 수 있다.
  • 국내 농축산물 물가는 아직 -1.0%로 조용하다. 국제 식량가격지수는 6월 이후 석 달째 오르고 있다.

이 글은 정보 공유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출처